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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 큰 별 백용성 스님 탄생 150주년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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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14-05-23 조회1,6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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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죽림정사 기념행사 열려

백용성 스님 사진
1919년 3·1운동 당시 불교계 대표 백용성(白龍城·1864~1940·사진) 스님은 천도교 대표 손병희(1861~1922)와 함께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을 주도했다. '독립운동가 백용성 조사 기념사업회' 이사장인 법륜 스님은 22일 간담회에서 "용성 스님은 1919년 당시 56세로 30대 젊은이였던 한용운 스님에게 실무를 맡기고 독립선언을 주도했다"고 말했다.

불교계의 큰스승이자 독립운동가인 용성 스님의 탄생 150주년 기념행사가 잇달아 열린다. 오는 29일 오후 2시에는 서울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기념 심포지엄, 탄생일인 내달 5일(음력 5월 8일)에는 탄생지인 전북 장수 죽림정사에서 기념식이 열린다. 천주교 김희중 대주교, 천도교 박남수 교령, 원불교 김대선 평양교구장 등 다른 종교 지도자들도 참석한다.

용성 스님은 불교의 현대화·생활화를 주창하며 한국 불교에 두드러진 업적을 남겼다. 1928년 사상 처음으로 화엄경을 한글로 번역해 출간했다. 당시 조선일보는 '세종 때에 국력(國力)으로 못한 일을 용성 화상이 단독으로 단행했다'고 보도했다. 서울 종로 도심에 '대각교당'이란 사찰을 세우고 절에 오르간을 들여놓아 찬불가를 직접 만들어 부르며 어린이 법회를 여는 등 불교 대중화에 노력했다.

독립운동가로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만주 용정에 사찰과 대규모 농장을 조성해 상해 임시정부 등 독립운동 단체에 많은 자금을 보냈다. 해방 후 귀국한 김구(金九) 일행은 대각교당을 찾아 이에 감사했다.

용성 스님의 법맥을 잇는 '용성 문중'은 한국 불교계의 큰 산맥으로 자리하고 있다.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성철 스님은 용성 스님의 손자뻘 제자다. 법륜 스님은 "조계종 종정의 60%가 용성 문중"이라면서 "스님은 청정한 수행으로 승려의 직분에 충실했고, 독립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타협 없이 실천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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