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생활·대중화는 온겨레 성불인연 짓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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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10-02-19 조회5,700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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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생활·대중화는 온겨레 성불인연 짓는 일
오온산중심우객(五蘊山中尋牛客)
독좌허당일륜고(獨坐虛堂一輪孤)
방원장단수시도(方圓長短誰是道)
일단화염소대천(一團火炎燒大天)
오온산인 몸 생각 듯 가운데서 심우 불성을 찾는 나그네가
텅 빈 집에 둥근 달이 훤히 비치는데 홀로 앉았도다.
모나고 둥글고 길고 짧은 이것이 누구의 도이랴
일단 ‘이뭣고’의 불꽃이 대천 번뇌를 태우는 도다
용성스님의 견도송(見道頌)입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감촉하고 뜻으로 분별합니다. 우리는 오감으로 분별하는 알음알이를 지적 미혹이라고 합니다. 또한 지적미혹에서 벗어난 경지를 ‘견도’했다고 합니다. 견도(見道)란 무엇입니까.
견도란 알음알이의 미혹에 얽매이지 않고 올바른 길을 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런 견도 위에서 수도를 해야 합니다. 수도란 쉽게 말해 정에 얽혀 있는 것을 풀거나 확실히 끊어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관념으로 굳어진 것들을 벗어버리는 것도 견도입니다. ‘금강경이 최고다’ ‘화엄경이 최고다’ ‘아함경이 최고다’ 하는 관념을 무너뜨리는 것도 수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수도를 바탕으로 만중생을 교화해야 합니다. 교화란 악을 짓는 자 못 짓게 하고, 선행을 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나쁜 길로 가는 자를 정도로 가게하고, 나쁜 생사를 짓는 자를 열반에 들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금강경의 대의와 대요를 알아야 합니다. 금강반야바라밀경의 대의는 무상(無相)으로 종(宗)을 삼고, 무주(無住)로 체(體)를 삼고, 묘행(妙行)으로 용(用)을 삼는 것입니다.
무상으로 종을 삼는다는 것은, 모든 현상은 언제든 변화하고 멸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을 존중하는 것을 뜻합니다. 종이란 자기주장의 요지이자 주(住)입니다. 종은 부처님을 말하는 것이고, 주는 행위주체인 불성을 말하며, 이것이 바로 참된 나입니다.
무주로 체를 삼는 것은 만물의 근본인 무주가 자성을 가지거나 집착하지 않고 연을 따라 일어나기에, 만물이 불변하는 본보양인 체를 근본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묘행으로 용을 삼는다는 것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작용하는 공용을 수승미묘한 수행법인 묘행을 통해 실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묘는 요도라고도 합니다. 요도는 생사를 건너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대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강경의 대의를 ‘무상으로 종을 삼고, 무주로 체를 삼고, 묘행으로 용을 삼았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아집과 법집을 파하고 아공(我空), 법공(法空), 구공(俱空)의 삼공(三空)을 수도의 요체로 삼으라는 말입니다.
아집은 자신의 견해에 집착해 떠나지 못함을 말합니다. 우리가 느끼는 여섯 가지 근본 번뇌는 이 아집의 힘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실본성이 아닌 아집과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이 실체라고 믿는 법집을 타파해야 합니다.
나에 집착하지 않으면 번뇌는 없습니다. 하지만 나 자신을 타파해도 법집을 타파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법집이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법에 집착한 나머지 각오(覺悟)를 얻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진리를 깨닫는 것이 무엇입니까. 참다운 진리란 바로 대오(大悟)하는 것입니다.
또한 삼공을 표현한다는 것은 반야를 깨친 보살의 지혜를 아상으로 삼고, 증득할 바 진여로서 인상을 삼으며, 온전히 깨친 것으로 중생상을 삼아 깨친 것을 잊지 않고 계속 행해야 함을 말합니다.
이것으로 부처님의 법이 곧 생활임을 인식하고 ‘불교의 생활화, 대중화, 지성화’를 실현해야 합니다. 생활이 곧 부처님 법이며, 부처님 법이 곧 생활입니다. 용성스님께서도 이런 가르침을 설하셨습니다.
불교를 생활화해서 모든 국민이 따르도록 불자들이 앞장서야 합니다. 불교를 대중화하는 것은 온 겨레와 인류에게 성불인연을 짓는 일입니다. 나 혼자 아무리 잘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참선이나 염불이나 간경이나 주력이나 어느 것이든 다 잘해야 불교가 지성화 될 수 있습니다.
불교에는 5대 수행이 있습니다. 5대 수행은 불사, 주력, 간경, 염불, 참선수행을 말합니다. 이들 수행을 통해 온 국민은 악을 그치고 선을 닦는 지악수선(止惡修善)의 생활과 생사의 괴로움을 여의고 열반의 즐거움을 얻는 이고득락(離苦得樂)의 수행생활을 해야 합니다. 세상이 시끄러운 것은 종교인들이 이고득락의 신앙생활을 회향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어리석음을 굴려 깨달음을 얻는 전미개오(轉迷開悟)의 수행생활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수도하고 교화해야만 일체중생 모두가 성불할 수 있습니다.
보시에 훈련이 돼있고, 좋은 마음을 내는 사람을 ‘능훈인(能熏人)’이라고 합니다. 능히 훈련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또 평소에 좋은 일을 하지 않다가 기회를 만나 마음을 내는 사람을 ‘이숙인(異熟人)’이라고 합니다. 해탈로 가는 길은 딴 데 있지 않습니다. 이숙인이 되고 능훈인이 되는 것입니다.
옛날 구례 화엄사가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자 스님들이 자기네 살 궁리에 절을 짓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조실스님은 “누가 보더라도 거룩한 성전을 지어야 한다”며 주지스님에게 “산을 내려가서 거지나 부자에 상관없이 무조건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절을 지어달라고 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주지스님은 조실스님의 뜻을 받들어 권선문을 지어 마을로 내려가던 중 한 거지를 만났습니다. 스님은 조실스님의 당부가 생각나 넙죽 엎드려 절을 하며 “거지님, 절을 지어주십시오”하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거지는 “밥을 빌어먹는 제가 돈이 어디 있어 절을 짓습니까”하며 어리둥절해 했습니다.
당시 화엄사 밑에는 큰 저수지가 하나 있었는데, 앞으로 가자니 주지스님이 막고 있고, 뒤로 가자니 저수지라서 갈 길이 없자, 거지는 굶어죽으나 빠져죽으나 매한가지니 ‘기왕 죽을 바에야 좋은 일 하나 하자’는 생각에 “부처님 제가 죽으면 임금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주십시오. 그때 절을 지어주겠나이다”하며 저수지로 몸을 던졌습니다. 주지스님은 ‘이 모두가 부처님의 뜻이니 절을 반드시 짓겠다’고 생각하고는 인연을 기다리며 20년간 엿 장사를 하며 전국을 떠돌아다녔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임금이 된 숙종은 밤마다 한 스님이 자신에게 “거지님 절을 지어 주십시오” 라고 말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이를 이상하게 생각해오던 임금은 어느 날 장터 행차 길에 엿을 파는 스님을 보게 되고, 그 스님이 꿈에서 본 스님임을 알아차리고는 자초지종을 듣게 됐습니다. 그리고는 지금의 화엄사 각황전을 지어주었습니다.
기왕 죽을 바에야 좋은 일 해야겠다는 그 생각이 바로 ‘이숙심’이고, 물에 빠져 죽은 그 거지가 바로 ‘이숙인’입니다. 좋은 마음을 내면 언젠가는 이룰 수 있습니다. 좋은 마음은 내지 않으면서 씨앗을 따먹으려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모두가 이처럼 이숙심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부처님께 예불공경을 올려야 합니다. 부처님 이 몸을 다 받으소서. 부처님 이 합장은 오분법신향이 되나니, 제보살의 법공양은 수행이고 모든 공양을 부처님께 공양하나이다. 부처님 나의 죄업을 참회하오니, 부처님 내 마음을 알아주소서. 내 이제부터 악업지음을 버리고 싶어라.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미래세에 성불 서원하소. 그러면 능훈식(能熏識)을 뿌리로 이숙식(異熟識)이 발동해 이숙인이 되어야만 능훈과 이숙을 꽃피워 보리열매 맺으리. 과거세부터 닦은 나의 공덕 일체중생 위해 보리회향, 열반회향 하리다.
정리=한명우 기자 [email protected]
사진=박재완 기자 [email protected]
기자가 본 도문 스님
도문스님에게는 ‘용성스님’과 ‘전법’이라는 단어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독립지사 33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용성스님은 10가지 유훈을 남겼고, 도문스님은 그 가르침을 받들어 실천에 앞장서고 있다. 도문스님이 가는 곳마다 강조하는 불교의 생활화, 대중화, 지성화도 용성스님의 교화지침이다.
도문스님은 그런 용성스님의 유훈을 널리 알리기 위해 언제 어디서나 전법에 여념이 없다. 공무원불자회와 논산훈련소 수계법사는 물론, 전국 각지를 다니며 포교에 몰두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불경과 조사어록을 100만권 이상 배포했고,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계를 주었다.
95년부터는 네팔에 대성석가사를 세워 해외 포교에 나섰고, 최근에는 인도 보드가야에 한국 사찰을 짓겠다는 계획으로 인도정부와 협의 중에 있다.
상좌인 환희스님(천룡사지 주지)은 “은사스님은 후학들에 대한 사랑과 보살핌이 극진하며 인정이 많아 어려운 사람을 그냥 지나치시는 법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계율과 예절을 지키지 않는 상좌들에게는 늘 불호령을 내릴 만큼 엄격하다.
14년째 스님을 모셔오고 있다는 ‘백용성 조사 유훈실현후원회’ 한명옥 회장은 “도문스님께서는 부처님 가르침을 몸으로 실천하는 분이고, 그 일념 하나로 지금까지 사셨다”며 “스님을 뵐 때마다 게으른 내 자신을 채찍질하게 된다”고 말했다.
도문스님은 1935년 전북 남원 출생으로, 46년 장성 백양사에서 동헌스님을 은사로 득도하고 만암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60년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이후 경주 분황사, 공주 마곡사, 장성 백양사, 정읍 내장사, 서울 대각사 주지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재단법인 대각사 이사장을 맡으면서 장수 죽림정사 조실 겸 주지, 경주 천룡사지 및 네팔 대성석가사 조실로 주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