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장(三藏)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10-02-27 조회4,108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경장(불언)
삼라만상은 인과응과가 만들어 낸 아름다운 꽃이다. 나무 숲은 산꽃잎이요, 오곡백과는 들꽃잎이요, 파도는 바다꽃잎이다. 작은 모래알은 해변의 꽃잎이며, 뭉게구름은 하늘의 꽃잎이다. 세상만사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
꽃들이 어울려 꽃밭을 만들고, 화단마다 의미가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아기자기하게 다듬어지거나 웅정하게 장엄되기도 한 것을 화엄세계라 말한다. 꽃들이 피어나서 장엄된 세상을 화엄(華嚴)세계라 하니, 해와 달과 별과 지구가 모두 인과응보에 의해 꽃이 되어 우주는 장엄한 것이다.
과거.현재,미래에 연결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화엄세계를 알기 위해, 모든 부처님이 법계(法界)의 근본을 설파한즉 오직 마음이 있어 창조하고 있음을 알았으니, 마음을 찾이면 화엄세계의 주인이 된다고 했다.
약인욕요지(若人欲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화엄경의 요지다. 이 세상의 창조주는 마음인데 우주의 근본인 마을 을 깨우친 자를 일러 "부처"라 하고, 무명에 가리워 본체를 보지 못하고 꽃밭에서 태어나 꽃밭에서 윤회를 하다가 꽃잎처럼 떨어져 죽는 자를 일러 중생이라 한다.
무릇 있는 바 모든 장엄세계가 영원하지 않고 끊임없는 인과의 고리에 의해 생멸을 거듭하는 것이니, 만약에 모든 존재가 본래의 존재가 아님을 알면 즉시 우주를 창조한 실체를 아는 여래를 만나게 된다.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즉견여래(卽見如來)는 반야사상의 정수인 금강경의 사구게(四口偈)다. 네 구절로 된 한시형으로 진리를 요약하여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나타낸다.
우주란 시간과 공간을 말함인데 시간적으로는 멈추어 있는 존재가 하나도 없으니 무상이요, 공간적으로는 영구불멸하는 당체가 따로 존재하지 않고 수시로 변모되니 무아다. 다만 인과응보에 의해 생멸(生滅)이 있을 뿐이니 그 도리를 알면 생사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 안락을 얻게 된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이 바로 모든 중생이 궁극적으로 성취하고자 하는 법화경의 세계다. 제법종본래(諸法從本來) 상자적멸상(常自寂滅相) 불자행도이(佛子行道已) 내세득작불(來世得作佛)이라 했으니, 삼라만상의 화엄세계가 본래로부터 나타났다가 근본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우주는 스스로 변함이 없어 고요할 뿐이니, 그 도리를 알고 행하면 반드시 각자(覺者)가 된다고 했다.
우주는 끊임없이 피어나는 꽃들에 의해 장엄된 화엄세계인데, 그 도리에 계합되어 생사윤회로부터 해탈되어 진리의 꽃으로 피어나는 법화가 바로 각자인 "붇다"인 것이다. 고로 불교는 화엄세계를 알고 그 법계에 일치하는 화엄삼매를 이루어 생명체마다 법화가 되는 것이며, 그 지혜를 일어주심이 부처님의 말씀인 경장(經藏)이다.
모든 경전의 목적은 중생을 전미개오시켜 각자를 만드는 것이며, 각자로 하여금 무명으로 육도윤회하는 중생들을 제도하여 왕생극락케 하는데 있다. 눈을 뜨고 보면 한 물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인연이 있어 생멸의 장엄이 있을 뿐이며, 삼라만상을 만드는 주인공은 마음일 뿐이다.
율장(불행)
율(律)은 법이다. 법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자연의 법칙처럼 당연한 행위의 근본이므로 去에 水를 합하여 法이라 했고,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실천하여 만들어가는 길이기에 율이라 했다. 곧 법률(法律)이다.
불자들이 수행하는 데 있어 절대로 지켜야 하는 규칙을 율이라 하지만, 올바르게 불법(佛法)을 수행하는 것을 능히 알아야 하기에 율행(律行)이라고도 말한다. 신구의(身口意)의 작용이 다 行이지만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함은 본래 정해진 형태가 아님으로 행하여도 행함이 아닌 無作하는 지선행(至善行)을 율이라 한다.
율장이 설한 행의 근본을 계(戒)라 한다. 금지, 제제시킨다는 뜻이지만 소극적으로는 방비(防非), 계체(戒體), 계행(戒行), 계상(戒相)의 네가지가 있다. 계법은 부처님이 제정한 제반의 율법이고, 계체는 계를 일러주는 방법에 따라 마음에 받아들여 방비, 지악하는 작용이 있음을 말하며, 계행은 계체를 낱낱이 실천하여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이고, 계상은 그 행에 따른 여러가지 차별상을 말한다. 대승계,소승계 등의 구별이다.
승속(僧俗)을 떠나 인간이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근본계행을 오계(五戒)라 한다. 생물을 죽여서는 안되는 불살생계(佛殺生戒), 남의 물건을 훔쳐서는 안되는 불투도계(佛偸盜戒), 남이 지키는 것을 침범해서는 안되는 불사음계(佛邪淫戒), 거짓말을 해서는 안되는 불망어계(不妄語戒), 술을 마시고 취해서는 안되는 불음주계(不飮酒戒)를 말한다.
죽이지 않으려면 어진 마음이 있어야 하고 도둑질하지 않으려면 사물을 판단하는 지혜가 있어야 하며, 남의 것을 침범치 않으려면 의리가 돈독해야 하고, 취하지 않으려면 예절이 발라야 하며, 헛소리를 하지 않으면 신뢰를 얻게 된다. 인왕경(仁王經)은 오계를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에 비유하여 오계여오상(五戒與五常)이라고 했따.
사람마다 신구의(身口意)로 짓는 삼업(三業)을 풀어, 신은 불신(佛身)이 되고, 구는 불언(佛言)이 되고, 의는 불심(佛心)이 되기 위해 십선도(十善道)를 행하는데, 이를 일러 사람의 실천자인 미륵이라 말한다.
불살생계를 지키는 것은 소극적이기에 적극적으로 방생하여 생명의 근본이 둘이 아님을 실천하고, 불투도계를 지킴은 물론 보시행을 하여 오히려 베풀어 주고, 불사음계를 지켜 청정무구한 행위로 걸림이 없으며, 진실한 말로 불망어계를 지키고, 성실한 대화로 꾸며대지 않아 불기어계(不綺語戒)를 지키며, 부드러운 말로 악한 말을 하지 않는 불악구계(不惡口戒)를 지키며, 이기주의를 버리고 평등함을 실천하여 불탐욕계(不貪欲戒)를 지키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상대방을 이해하여 화를 내지않는 불진에계(不瞋?戒)를 지키며, 지혜로운 마음으로 어리석지 않는 불사견계(不邪見戒)를 지키면 모두 미륵불이 된다.
성 안내는 마음이 참다운 공양구(供養具)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가 미묘한 향이듯이, 계행을 실천하고자 함은 그 목적이 부처님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중생을 편안케 하고 스스로 불신(佛身)이 되어감에 있다. 고로 계행은 스스로 발심(發心)한 자신과의 약속이며, 사바세계를 한발자욱씩 건너가는 징검다리와 같은 것이다.
논장(사설)
논장은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중생의 경지에 맞도록 해설한 경전이다.
부처님 스스로 진리의 법상(法相)을 문답식으로 설명한 것과, 부처님의 제자와 불멸 후 용수, 마명, 천진 등의 보살들이 경전의 뜻을 해석하여 불교를 전달하기 위해 논리적으로 체계를 세워 놓은 것을 말한다.
인간이 오관작용을 통해 수입하는 지식의 통로는 크게 네가지로 나눈다. 직감지(直感知), 추리지(推理知), 비교지(比較知), 성언지(聖言知)가 그것인데, 제 아무리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 지식의 수입 경로는 단순하다. 직접 경험을 통해 얻은 직감지나, 스스로 추리를 해서 확신하게 된 추리지나, 이것인지 저것인지 비교를 하여 결론을 내린 비교지나, 믿는 성현의 말씀이기에 믿기로 한 성언지거나 수시로 변화를 일으키는 조건부적인 지식에 불과하다.
인간의 경험은 나이나 환경에 따라 달라지게 되고, 지식의 능력 여하에 따라 추리의 깊이나 범위도 변하게 되며, 지식의 변화에 따라 사물과 사건을 비교할 수 있는 척도가 달라질 수 밖에 없고, 믿음의 대상이 수확과정이나 종교의 차이 등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할 때마다 믿음의 대상을 인식시켜 주는 지식적인 행위가 있어야 하는데, 이를 논리학이라 한다.
서양인들의 사고방식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한 삼단논법(三段論法)인 귀납법(歸納法)과 연역법(演繹法)으로, 역사적으로는 시종관(始終觀)을 물리적으로는 物에서 物을 찾고 心에서 心을 찾는 동질성을 종교적으로는 창조주의 절대성과 피창조물의 간격을 인식해야 하는 평행성을 낳았다.
그러나 동양인들의 사유방법은 오단 논법으로 서론, 본론, 결론 이라는 과정을 따라 설명하거나 인식하려 하지 않고 주장과 결론을 동시에 결합시키는 공감의 대화법을 익혔다. 사물을 분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통찰함으로써 소유보다는 함께 존재하는 지식을 추구했다.
어떤 지식을 확정지을 때까지 추리를 해가는 과정을 宗.因.類.合.結로 오단계로 나뉘어 삼단논법보다 복잡하게 보이지만, 결론을 내려야 하는 주장을 먼저 제시함으로써 공감이 되었을 때는 바로 결론을 지을 수 있는 논리법이다.
"저 산에 불이 있다."고 주장(宗)을 했을 때 함께 인식한다면 " 그렇다"라고 공감하면 된다. 계합되지 않으면 " 저 산에 연기가 있기 때문"에 라는 이유(因)를 대야 하고 "연기가 있는 곳엔 반드시 불이 있지 않느냐? 마치 부엌처럼"이라는 실례(類)를 들어 이해시켜야 하고, "그런데 저 산에 연기가 바로 불이 있다는 증거"임을 적용(合)하여 필연적으로 일치시킴으로써 " 고로 저 산에 불이 있다."는 결론(結)을 얻어내는 것이다.
화엄경은 신해행증(信解行證)의 논리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믿고 이해하고 실천하여 믿었던 그 경지를 증득하는 것이다. 그러나 순서대로 인식해 가자면, 먼저 이해가 되어야 실천할 수 있으며 그 경지를 증득해야만 확신할 수 있다.
신해행증(信解行證)이 解行證信, 行證信解, 證信解行 등 어떤 순서로 변하든 어느 한가지라도 빠지면 화엄삼매를 얻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네가지 중 어느 한가지만 얻어도 화엄삼매가 아니랄 수 없다. 신해행증은 서로 다르지만 근본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믿지 않는데 이해될 리가 없고, 이해하지 못하는데 실행할 수 없으며 실천 없는 증득은 허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논장은 부처님의 말씀인 경장을 믿고 이해하는 신해(信解)와 부처님의 실행인 율장을 실천하여 증득하는 행증(行證)을 일러주는 실천불교의 방법이다. 이심전심의 논리법으로 바로 마음을 가르키고 터득하여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하고자 중생의 지식을 덜어내는 고된 직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