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력(呪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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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10-02-26 조회8,44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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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언어가 인간의 생각, 사상, 의미 등으로 개념화되어 사용되는 의자전달의 매개체라면 소리는 어떤 사물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인위적인 것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사물 자체의 순수한 언어 곧, 참말인 것이다.
주력(呪力)은 진실한 말의 힘을 뜻한다. 그야말로 참말이다. 그래서 그것을 진언(眞言)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통상 주력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 참말이 신비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말이 갖는 신비한 힘으로 사람의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하고 깨끗하며 평화롭게 하는 것이다.
진언, 즉 주력은 개념이나 인위적인 의도 등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말 이전의 말’이다. 사람의 의도가 개입되기 이전의 소리이기 때문에 이것을 범음(梵音)이라고도 하며 우주의 소리라고도 한다. 존재 본래의 소리인 것이다.
아이에게 오줌을 누일 때 엄마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누구나 “쉬~”이다. 그런가 하면 태어난 지 얼마되지 않은 아이가 자신을 세상에 내어준 존재를 부르는 소리는 세계 공통적으로 “옴마, 엄마, 마암…” 등이다. 아이는 물론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이처럼 주력은 말 이전의 소리를 통해서 존재의 본질로 들어가는 수행법으로서 고대 인도에서 시작하여 티베트에서 꽃을 피운 수행법이다. 진언은 인도 말로는 만트라라고도 하며 다라니(陀羅尼), 총지(總持 ), 심인(心印), 능지(能持), 명주(明呪), 호주(護呪)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소리 자체가 중요하다. 그 소리가 매개하는 의미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따라서 주력 수행을 하게 되면 스스로 내는 소리의 파장을 따라 몸의 각 부위가 울리고 그 때마다 신체 내 세포마다에 깊숙이 기록되고 저장되었던 여러 가지 기억이나 마음들이 풀려진다. 이 과정에서 업장이 소멸하고 모든 번뇌 망상이 소멸됨으로써 수행자는 심신의 자유를 얻게 된다.
주력 수행은 언어 자체의 소리에 집중할 뿐이다. 다른 의미나 영상을 만들어서 소리를 낸다면 수행을 놓친다. 만약 수행자가 부처님의 형상이나 나름대로의 생각을 굴리면서 주력을 할 경우 그것은 스스로 마구니를 끌어들이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주력은 소리로써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망념, 자기 안의 부정적인 생각, 마음 아팠던 기억, 미워했던 기억, 슬펐던 기억 등등을 지우고 청소하는 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모르고 주력 자체를 신비화하거나 밖에서 뭔가를 불러들이는 도구로 사용하게 되면 그 자체가 망념이다.
앉을 때는 반가부좌나 평상좌를 한다. 눈은 가볍게 떠서 앞을 보되 50센티미터 지점에 자연스럽게 떨어뜨린다. 손은 금강합장 또는 엄지손가락을 안으로 가볍게 감아쥔 주먹을 만들거나 펴서 무릎 위에 자연스레 올려놓는다. 그런 뒤에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몸에 긴장이 있거나 힘이 들어간 부분은 모두 이완시키고 진언을 염송한다. 주력수행을 할 때에는 입으로는 한 자 한 자 발음을 명확히 하고 귀로는 그 소리를 한 자도 놓치지 않도록 하며 눈으로는 글자를 한 자 한 자 바르게 새기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주력을 할 때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마음을 집중함으로써 몸의 파장을 온전히 감지하며 일념이 되도록 염송해야 한다.
처음으로 주력을 하는 수행자일 경우 우선은 몸과 마음 중 그 대상을 하나에만 집중하는 것도 좋다. 즉, 진언을 지송하되 듣기에만 집중하든지 몸의 파장에만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언을 염송하면서 본인이 일념으로 집중하는지 아니면 번뇌망상 가운데 진언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림이 분명한 가운데 염송해야 한다.
주력 수행 중에 생각이 일어나면 생각이 일어나는 줄 알고, 흘러가면 흘러가는 줄 알고, 사라지면 사라지는 줄 알되 생각과 싸우지 않아야 한다. 어떤 생각이 집요하게 일어나는 경우에는 그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그 원인과 집착하는 바를 살펴서 그것을 잘라버리거나 놓아버린 후 진언에 몰두한다.
주력수행의 방법은 다양하다. 지송하는 경전에 따라서 그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천수경》은 불자들이 많이 지송하는 경전 중에 하나이며 다라니들이 많이 열거되어 있다. 그 여러 다라니 중에 핵심이 천수대비주(千手大悲呪)이다.
천수다라니가 설해진 이유는 관세음보살의 자비, 평등, 두려움 없는 마음, 공경심, 위없는 보리를 구하는 마음, 공을 관하는 마음 등을 내어서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하고자 하는 것이다. 천수대비주를 지송하는 수행자는 이러한 마음을 자신의 마음에 새겨야 한다.
천수대비주를 지송하는 기본 절차는 여타 주력 수행법의 모범이 될 것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① 수행 장소를 청결히 하고 몸과 마음가짐을 잘 가다듬는다.
② 수행 장소에 천수관음상을 모시는 것이 좋다. 아니면 석가모니불이나 대세지보살을 모신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마음속에 불상을 모신다.
③ 주력을 하기에 앞서 여러 불보살과 천신들, 또는 관세음보살에게 예를 올린다.
④ 간절한 마음으로 원을 세운다. 자신과 타인을 위한 큰 자비심을 일으켜서 자신의 본래면목과 타인을 위해 기도한 다.
⑤ 다라니를 염송할 때는 다라니에 마음을 집중한다. 천수대비주는 21번, 또는 108번을 지송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⑥ 다라니가 품고 있는 공덕과 그 힘에 대해 굳건히 믿는다.
⑦ 다라니 지송이 끝나면 자신의 잘못에 대해 참회한다.
능엄주를 지송하는 절차 등에 대해서 특별히 제시된 바는 없다. 그러나 수행자는 《능엄경》의 정신을 간직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능엄경》을 외울 때는 경 전체를 독송하기 어려우므로 경전에서 말하고자 하는 근본정신을 알고 지송하는 것이 좋다. 능엄주를 지송할 때에도 준비, 예경, 발원, 참회, 염송 등이 동반되면 바람직할 것이다.
능엄주 지송에 대한 대략적인 방법은 위의 천수대비주 지송과도 비슷하다. 부처님을 모시고 향을 사른 다음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과 개법장진언(開法藏眞言)을 외우는 순서로 진행한다. 그런 다음 능엄주를 지송하고 회향게를 하며 발원으로 마친다.
‘옴마니반메훔’이라는 육자진언 또한 많은 불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연꽃 속의 보석이여’라는 의미를 지닌 이 진언에서 옴(Om)은 만물의 시작과 보존과 끝을 의미한다. 마니(mani)는 보석을 뜻하며 반메는 파드마(padma :연꽃)를 일컫는다. 훔(hum)은 모든 과정의 종결, 마무리를 의미한다. 이 육자진언은 관세음보살님의 미묘한 마음이 드러나길 바랄 때 많이 지송한다.
진언을 지송할 때는 허리를 편 채 가부좌하고 합장한 상태에서 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자세이다. 진언 횟수를 세기 위해 염주를 드는 경우도 있고 시간을 정해놓고 하기도 한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은 생각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생각은 숱한 추리와 억측을 생산해내고 그것을 반복함으로써 결국 다양한 감정습관이나 행동습관을 만들어낸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생각과 행동의 윤회에서 자유롭지 못한다. 자신의 ‘생각’ 이 만들어 놓은 것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짙은 어둠 같은 미망 속을 헤매면서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자각의 힘을 잃게 되기 십상이다.
진언은 말 이전의 말이다. 즉, 말의 자취, 생각과 의미가 사라진 말이다. 그러면서도 그 말은 부처님의 마음을 오롯이 드러낸다. 따라서 우리는 주력을 외움으로써 삿된 생각을 차단하고 무념무상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 무념의 경지에서 부처님 마음을 직시하고 나의 진정한 생명력과 우주와 접하게 되는 것이다. 주력수행을 통해 과거의 업장을 다스림으로써 건강을 회복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시각 장애인의 눈이 밝아지는가 하면 반신불수 환자가 완쾌하거나 스트레스로 인한 심리적 질환에 시달리는 환자의 증세가 호전되는 효과를 보이고 있다. 이는 어느 수행법보다 업장소멸 효과가 크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선가귀감》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금생에 지은 업은 비교적 다스리기 쉬워 자기 힘으로 고칠 수 있지만 전생에 지은 업은 지워버리기 어려우므로 진언의 신비한 힘을 빌리려는 것이다.” 주력수행의 특징은 마음을 굳건하게 하는 기능과 깨달음을 얻게 한다는 데 있다. 강한 억념(憶念)을 지님으로써 모든 선법을 모으고, 모든 악법을 멀리하는 역할에 탁월하다. 이것이 견고하면 복덕과 지혜를 모으고 불심을 향한 마음이 금강처럼 굳건해진다. 주력수행이 깨달음과 연결되는 지점은 《반야경》이다.《반야경》에서는 주력수행이 궁극적인 지혜를 드러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라니 자체가 반야바라밀로 취급되어 다라니 지송 수행으로서 새로운 수행의 영역을 구축하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대지도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반야바라밀다주는 능히 노병사(老病死)의 고통을 면하게 하며, 중생을 대승에 서게 하여 그로 하여금 일체 중생 가운데 최고인 부처가 되게 한다. 대명주(大明呪)라고 하는 것은 바로 그런 뜻이다.” 반야바라밀다주는 ‘다라니’요 ‘명주’요 ‘부처님’이다. 따라서 반야바라밀다주를 지송함으로써 일반 신도들이 대승의 세계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인도에서 밀교가 만개되자 다라니 지송수행으로 깨달음에 이르게 되는 과정이 확실하게 정립된다. 특히 밀교에서는 현재 이 몸으로 성불을 이루는 즉신성불(卽身成佛)을 강조한다. 그 성불의 과정에 입을 진언을 외는 것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아가 다라니가 중심이 되는 경전을 보면 다라니는 경전 내용이 응축된 결과로 묘사되고 있다. 다라니 지송이 경전 독송의 공덕과 유사해진 것이다
(대한불교 조게종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