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성조사 제75주기 열반일 기념법회2015.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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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15-04-13 조회4,052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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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용성조사 열반 75주기 기념법회가 있는 날입니다. 스님과 서울 공동체 대중들, 그리고 SBS 촬영팀은 새벽 2시 30분에 일어나 3시에 전라북도 장수군에 있는 죽림정사로 출발했습니다. 죽림정사에는 문경공동체 행자원의 행자님들이 행사와 공양 준비로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유수스님을 비롯한 법사님들과 서울 공동체 대중들, 그리고 문경공동체 행자원 대중들과 함께 6시 30분에 발우공양을 하셨습니다. 도문 큰스님께서 오셨더라면 참 흐뭇해 하셨을 텐데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스님과 법사단, 그리고 서울공동체 대중들은 9시 30분부터 교육관에서 다례재를 올렸습니다. 석가여래부촉법 제1세 마하가섭 존자로부터 인도와 중국을 거쳐 해동 법맥을 이은 역대조사들에 대한 지극정성으로 다례를 올렸습니다. 이어 기념법회가 열렸는데, 일요일인데도 기념법회에 참석하기 위해 전국에서 600여 명의 대중들이 모였습니다.
벚꽃이 만발한 화창한 일요일, 대지는 푸른 옷을 갈아입은 모습이었습니다. 생동하는 봄기운이 느껴지는 가운데, 죽림정사에는 쉼 없이 찬바람이 불어 닥쳐 자꾸 옷깃을 여며야 했습니다. 죽림정사는 백두대간의 중심에 위치한 장안산 아래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행정지명으로는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 죽림리입니다. 이곳은 백용성 조사님의 탄생지로(사)독립운동가 백용성조사 기념사업회와 백용성조사 유훈실현 후원회의 주도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인 백용성조사님의 유지를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습니다.
용성조사님(1864~1940)은 석가여래부촉법 제68세, 석가여래계대법 제75세, 조선불교중흥율 제6조이시자,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불교계의 대표로 서명하셨고,불교의 지성화·대중화·생활화운동을 전개하는 등 현대 한국 불교의 기초를 닦은 근대 한국불교의 중흥조이십니다.
또한, 용성조사님은 1919년 기미 3·1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중 불교계를 대표해서 서명하셨고, 그 이후 평생을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독립운동가이십니다.
백용성 조사님께서는 독립운동에도 헌신하셨지만, 기복신앙으로 왜곡된 불교 현실에서 정법을 다시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용성조사님의 제75주기 열반일 기념법문을 통해, 용성조사님의 평생의 삶을 다시한번 정리해 주시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배워야할 바가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시절에는 나라의 독립이 시대적 과제였다면, 오늘 이 시점에서 시대적 과제는 분단된 나라의 통일입니다. 발해 멸망이후 대륙을 잃고 반도에 갇혀 강대국의 변방으로 전락한지 일천여년만에 그 천년의 한을 풀고 동북아에서 자주 독립국가로서 옛 위상을 되찾기 위해서는 민족의 통일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고구려와 다물사상으로 건국이념을 삼았듯이 우리는 새로운 100년의 비젼을 위해 통일을 반드시 성취하겠다는 원력보살이 되어야 합니다”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기념법회가 끝난 뒤 즉문즉설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질문하는 사람은 6명이었습니다. 여자와 음식에 대해서는 절제가 잘 안 된다는 분,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은데, 수행에서는 옳고 그름을 가리지 말라고 하셔서 사회문제를 등한시하라는 의미로 들린다는 분, IMF 이후에 남편이 주식투자에 빠져있어서 걱정이라는 분, 친정어머니에게 마음이 많이 일어난다는 분, 그리고 환경운동을 하다 보니 모든 것을 파괴하는 인간들이 혐오스러워진다는 분 등 대단히 솔직한 질문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중에서 세월호 관련 질문과 답변을 나눕니다.
질문자는 “광화문에서 슬퍼하는 분들과 함께 슬픔을 나누고 왔습니다.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도웁게 된다는 부처님 말씀이 있는데, 사회에서는 억울한 일들이 계속 일어납니다. 이때 함께 공감하고 위로를 나누게 되면 서로가 치유가 되는 듯합니다. 억울한 일들은 밝혀야 되는 것이 아닌지요?”라고 질문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밝혀야 한다면 밝혀야지요. 그렇지만 때론 침묵이나 때를 기다려야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밝히는 것이 상대에게 억울함이 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추행당한 사람의 얘기를 들으면 그 사람의 말이 옳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무고를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도 젊었을 때는 보왕삼매론의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말라’는 말씀이 이해가 안돼서 이건 아니지 않나 이런 생각에 빠졌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여러 다양한 계층과 사례들을 접하고 상담하면서 이해하게 됐습니다.세상에 죽을 놈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사람도, 내막을 알고 보면 그 사람 입장에서는 정말 억울한 일이 많았습니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으로 진실을 밝히려고 하면, 얼마 못 가 지치게 됩니다. 우리 사회에서 사실이 규명되지 않는 것은 뭔가 이유가 있어 밝혀질 수 없는 사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이것을 몇몇 국민의 힘으로 밝히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른 정부가 들어서서 국민 다수가 참여해 원인규명을 할 수 있도록, 사회를 보다 투명한 방향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때로는 더 효율적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다 이뤄지지 않지 않습니까? 지금 당장 규명이 안 된다고 해서 분노하면, 그만큼 허탈해지고 냉소하다가 결국 바뀌지 않는 정치 현실에 염증을 느끼고 돌아서게 됩니다. 그러면 이 세상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그 일이 어렵더라도, 그 누구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하더라도, 만약 꼭 해야 하는 일이라면 분노하기보다, 현실을 직시하면서 바꿀 수 있는 방법 쪽으로 힘을 모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할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세상에 분노할 일이 많은데, 분노하기보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그쪽으로 꾸준히 정진하고 힘을 모아가는 일이 수행이라는 말씀이 많이 와 닿았습니다.
즉문즉설을 마친 뒤 사홍서원으로 1부 행사를 끝내고 대웅전 계단에서 단체 사진 촬영이 있었습니다. 대웅전 계단에서 스님의 당부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암울한 시대에 굴복하지 않으시고, 수행의 관점을 놓치지 않으시며 민족과 불교 중흥을 위해 애쓰신 백용성 조사님의 뜻 깊은 열반일을 맞아 이곳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용성조사님의 생가 터에서 면면히 흐르는 민족사와 불교사의 정수를 온 몸으로 느끼고 새기셨기를 바랍니다. 용성조사님의 뜻이 오늘 정토회 활동을 통해 이어져가는 것을 마음에 새기고, 내가 몸담은 정토회가 부처님의 정법을 계승한 곳임을 확신한다면 외부의 그릇된 소견에 흔들리지 말고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히 활동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재삼 당부하셨습니다.
간부수련과 담당자 수련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하셔서 피곤하실법한데도, 스님께서는 여전히 힘 있고 활기찬 모습으로, 때로는 단호하고 명쾌한 답변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이런 스승님의 은덕에 힘입어 우리의 삶이 더 가벼워져서, 용성스님의 유훈을 잘 받들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전 내내 심하게 불던 바람이 잦아지면서 경전반 학생들은 따스한 봄볕 아래 묘수법사님과 무변심법사님으로부터 사찰안내를 받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사찰 경내를 다니시면서 오늘 행사를 위해 애써준 담당자들과 따스한 정담을 나누셨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스승을 통해 과거로부터 면면히 이어 내려오는 조사의 원력과 노고를 새기고, 원대한 미래를 꿈꾸는 정토행자로 거듭나리라 믿습니다.
내일은 두북어르신 봄 나들이가 있습니다.